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의 반 고흐 이중섭, 황소

by kihoon.story 2023. 9. 2.

한국의 반 고흐 이중섭

한국의 반 고흐 이중섭

한국의 반 고흐라고 불리는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매우 부유한 대지주의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본인의 형과는 열한 살, 누나와는 열 살 차이가 나는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부모님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이중섭이 4세가 되었을 때 이중섭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게 됩니다.

이중섭은 어려서부터 사과 같은 과일이나 먹을 것을 받으면 우선 그림을 그러고 나서 나중에 먹을 정도로 그림 그리를 많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 후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학창 시절에 자신의 스승인 임용련을 만나 미술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중섭의 스승인 임용련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미술 공부를 하고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시대에 많이 찾아볼 수 없던 서영화가였습니다.

이중섭은 임용련을 통해서 자유로운 서양의 미술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눈을 뜨기 시작했고, 이중섭은 그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미술을 배우기 위해서 자신도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중섭은 공모전에서 수상을 해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 당시 이중섭은 소를 주제로 한 자신만의 그림을 많이 그려냈으며, 이후 이중섭은 1943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여담으로 이중섭은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나게 된 일본인 후배인 마사코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마사코가 홀로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와 1945년에 결혼을 하고 이때 마사코는 이남덕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행복한 날들을 보냈지만 얼마 후 한국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북한 지역에 살던 이중섭은 남한으로 내려와 부산, 제주, 통영, 진주, 대구 등으로 피란을 다니면서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1952년 힘들고 지치는 어려운 생활을 견디지 못하던 이중섭의 부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이중섭은 늘 외롭게 살면서 부인과 자신의 두 아들을 그리워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중섭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1955년 미도파 화랑에서 자신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중섭의 개인전은 너무나 성공적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중섭의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팔린 그림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과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이중섭은 크게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이후 이중섭은 일본으로 돌아간 자신의 아내와 두 아들에 대한 그림과 한 명의 미술가로서 감당해야 하는 좌절감 등이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마음의 병이 커져가고 있던 이중섭은 조현증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져 가던 이중섭은 결국 1956년 9월 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외롭게 홀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중섭 그의 나이는 겨우 40세였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이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고 그림을 사랑해 일본으로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이중섭의 시대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 있었고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도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힘겹게 살아온 이중섭은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에 힘찬 소와 행복한 어린이들을 그림으로 많이 그렸고, 오늘날 한국의 고흐이자 천재 화가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중섭의 삶에도 외롭고 불행한 일들이 많았지만 이중섭은 늘 행복과 희망을 꿈꾸는 이상적인 사람이고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황소

황소

이중섭의 그림 황소는 크기는 세로 32.3cm, 가로 49.5cm로 이중섭이 1953년경에 그린 작품입니다.

이중섭은 오산학교를 다니던 시절 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시작하였고, 30대인 1950년대에 그의 소 그림은 최고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오산학교 학창 시절부터 들에서 묵묵하게 일을 하고 있는 황소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런 소를 열심히 스케치하였고 이러한 이중섭의 깊은 관찰을 통해서 이루어낸 그의 소 그림은 굵은 붓을 사용하면서 거칠게 표현이 되는 붓질에 의해서 근육질의 소 형태로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중섭의 황소 그림은 다른 황소 그림들과 달리 황소의 머리 부분을 크게 확대하여 그리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붉은 바탕의 배경에 이중섭의 자신만의 거친 붓질로 표현된 황소는 몸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향하고 있으며 고개는 왼쪽으로 돌리면서 울부짖고 있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붉은 바탕의 배경으로 초점을 잃어버린 채로 어딘지 모를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황소의 눈이 황소의 슬픈 내면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이중섭 본인의 비극적인 내면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피란의 삶을 살았던 이중섭에 황소 그림들은 작가 자신의 분신이었다고 합니다.

이중섭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감정등을 상징적으로 그림 속의 황소에 잘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이중섭의 개인적인 삶을 상징하는 듯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보편적으로 우리에게 황소는 우직하고 성실한 이미지인 것을 통해서 우리의 민족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중섭의 황소 그림에서 황소는 분노와 고통 그리고 절망으로도 표현되기도 하고 반대로 때로는 힘과 의지 그리고 희망의 상징으로 이중섭은 황소의 그림으로 다양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 가사 마지막에 황소 그립 중섭이라는 가사가 나오죠 ㅎㅎ 미술가로서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에 들어가다니 최고의 성공 아닐까요? 하지만 그와 반대로 한국의 고흐라고 불리는 이유도 글을 작성해 보니 알겠되었습니다 고흐처럼 힘들고 슬픈 일을 너무 많이 겪었으며 그럼에도 그림을 손에서 놓지 않던 모습과 너무 안타깝게도 일찍 떠나버렸지만 본인과 본인들의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인정받고 여전히 사랑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