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물화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by kihoon.story 2023. 8. 21.

인물화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자화상

인물화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452년 4월 15일 피렌체 근교 빈치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공증인 세르 피에로의 서자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카타리나라는 이름을 가진 농사꾼의 딸로

신분의 차이로 아버지와 공식적인 혼인 관계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태어날 당시 그의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학문을 배웠고, 음악에도 재주가 뛰어났으며, 그림 그리기를 즐겨하였습니다. 

1466년 피렌체로 가서 부친의 친구인 안드레아 델 벨로키오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인체 해부학을 비롯한 자연현상의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를 습득하면서 사실주의의 교양과 기교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특징인 깊은 정신적 내용의 객관적 표현은, 그의 놀라운 사실적 표현기교의 구사에 의해서만 가능하였습니다. 사실상 15세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사실기법을 집대성하여, 명암에 의한 입체감과 공간의 표현에 성공하였으며, 그는 점차 15세기 적인 요소를 극복하기 시작하였고, 주관적 객관의 조화로 고전적 예술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과학적인 관심을 갖고 수많은 소묘를 남겼습니다.

인체해부를 묘사한 그림들은 인체묘사와 의학발전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과학적 연구는 수학. 물리. 천문. 해부. 지리. 토목. 식물. 기계등 다방면에 이르렀으며, 이들에 관한 수기나 인생론. 회화론. 과학론 등을 많이 남겼습니다.

현재의 오늘날에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는 해부학. 기체역학. 동물학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연구결과는 19세기말에 들어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의 과학적인 천재성을 증명하였으며 현재 그의 기록이 23권의 책으로 남아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훌륭한 업적인 원근법. 자연에의 과학적인 접근, 인간신체의 해부학적 구조, 이에 따른 수학적 비율 등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의해 완벽한 완성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의 명성은 몇 점의 뛰어난 작품들에서 비롯하는데 그 작품들이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동굴의 성모', '동방박사의 예배',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등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지구상에 생존했던 가장 경이롭다고 할 수 있는 천재들 중 한 명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1519년 프랑수아 1세의 초빙으로 프랑스의 보아주로 가서 건축과 운하 공사등에 종사를 하다가 그의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미술. 건축. 토목. 수학. 과학. 음악등의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으며 이러한 그의 생애를 5 시기라고도 하는데, 제1차 피렌체 시대(1466년부터 1482년), 제1차 밀라노 시대(1482년부터 1499년), 제2차 피렌체 시대(1500년부터 1506년), 제2차 밀라노 시대(1506년부터 1513년), 로마. 앙부아즈 시대(1513년부터 1519년)로 구분합니다.

 

모나리자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작중 하나인 모나리자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라 조콘다(La Gioconda)라고도 합니다.

모나리자의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유부녀에 대한 경칭, 리자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 조콘다의 부인의 이름입니다.

조 콘다부인은 G.포지의 조사를 통하여 피렌체의 안토니오 마리아 디 놀드 게라르디니의 딸임이 판명되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명은 리사 게라르디니(Lisa Gherardini)입니다.

모나리자 작품은 리사 게라르디니의 나이 24-27세 때의 초상이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았을 때 미완성의 초상화를 가지고 갔는데, 왕에게 4,000에큐에 팔려 퐁텐블로성에 수장되었습니다.

때때로 세정도 하고 광택용 니스를 바르기도 하여 제작 당시의 느낌은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모나리자는 눈썹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며, 이에 대해서는 그 때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기준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서는 눈썹을 뽑아버리는 일이 유행하였다는 설, 미완성작이라는 설, 원래 눈썹이 그려져 있었으나 복원 과정에서 지워졌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2009년에는 프랑스의 미술전문가가 240메가픽셀의 특수카메라를 사용하여 분석한 결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를 3차원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유약으로 여러 겹을 특수처리하였으며, 가장 바깥에 그려졌던 눈썹이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사라지거나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리기 위하여 광대와 악사를 불러 부인의 기분을 항상 즐겁게 함으로써 정숙한 미소를 가진 표정, 편안한 손 등을 표현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이며, 미술가들의 전기를 쓰는 작가로 유명한 조르조 바사리에 따르면 모나리자는 4년이 걸리고도 미완성으로 끝났다고 하며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2 피렌체시대에 해당하는 1503년부터 1506년 사이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모나리자를 보는 사람들에게 신비성을 느끼게 하면서 많은 풍설과 함께 '모나리자의 수수께끼'로서 오늘날에도 문학적 관심거리입니다.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간에 대한 감정과 관능을 표현한 것이라고도 하며, 모나리자는 역사적 경로에 불분명한 점들이 많아서 작품에 대한 신비성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모나리자는 대낮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을 당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적이 있지만 2년 후, 범인이 피렌체의 미술상 A.골리에게 팔기 위해 나갔을 때, 골리의 기지로 다시 제자리를 찾아오게 됩니다.

이번에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색다르게 인물화의 거장이라고도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의 유명한 대표작품 중 하나인 모나리자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그림을 완성 하기전까지 작성할수 있는 재밌고 미술과 관련된 좋은 글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던 중에 유명한 미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알려드리는 글을 쓰는것도 좋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 이러한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누구인지 모나리자가 어떤 그림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조사하면서 글을 작성해보니 모르던 사실도 많이 알게되었고 제가 그림을 좋아해서 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즐거웠던 시간이여서 자주 작성 해보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