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이자 화가이면서 '피에타', '다비드' 등의 조각 작품으로 사람 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고,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천지창조)와 벽화 '최후의 심판'을 그렸습니다.
이름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로 1475년부터 1564년까지 활동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1475년 피렌체에서 가까운 카프레제에서 태어났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미켈란젤로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지만 아버지는 귀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하였지만 소용이 없었고
미켈란젤로가 13세가 되던 해, 피렌체에서 유명한 화가 기를란다요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지만 조각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년 만에 스승인 기를 란디요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렌체의 통치자 로렌초 데 메디치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고 찾아옵니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았고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 조각 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첫 작품인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시작으로 '피에타', '다비드'등 많은 훌륭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다비드'는 사람 몸의 아름다움을 최고의 수준으로 표현해 낸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를 그린 화가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고개를 들고 있는 상태로 그림을 그리는 힘든 작업을 하고 천장마저 반듯하지 않고 둥글어서 어려움을 겪지만 미켈란젤로는 포기하지 않고 본인 혼자서 4년 동안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표현하는 340여 개의 인물상을 완성시켜 냅니다. 이 천장화(천지창조)로 미켈란젤로는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당대 최고의 거장이라는 명설을 가지게 됩니다. 그 후 60대가 된 미켈란젤로는 다시 한번 벽화를 그리는데, 8년에 걸쳐 완성시킨 작품이 바로 '최후의 심판'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본인의 삶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1547년 성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감독하는 일을 맡아 돔을 디자인했는데, 결국 완성된 모습은 확인하지 못하였고, 8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각상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만들며 창작 활동을 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난 후 고향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 묻혔으며, 그의 무덤은 화려한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은 바티칸 궁전, 시스티나 성당에 소장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는 1533년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위 벽에 최후의 심판도를 그리라는 명을 받게 됩니다. 클레멘스 7세가 이 그림을 그리도록 명령한 이유는 신성로마제국군에 의한 로마의 점령과 약탈 등 재난의 연속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으며, 1534년 교황의 사망으로 작업이 중지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바오로 3세가 다시 이 작업을 의뢰하면서 1535년 4월 16일 조립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541년 면적 167.14제곱미터의 벽면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대부분의 모습을 한 총 391명의 인물상이 드러납니다.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에 의한 '신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테가 그의 생에 중 만나게 된 사람들을 평가하여 지옥, 연옥, 천국에 그 위츠를 매긴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시각적 표현에 의하여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상의 세계에서 지옥의 세계로 차례를 매겨 나갔습니다.
이 그림은 크게 천상계, 튜바 부는 천사들, 죽은 자들의 부활, 승천하는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는 무리들로 5개 부분으로 나눕니다.
중앙의 그리스도는 지금까지 흔하게 그려졌던 모습과는 다르게, 수염도 나지 않은 당당한 나체의 남성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 곁에는 성모 마리아가 앉아 아래에 있는 인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두 사람 주위를 성자들이 원형으로 둘러싸`듯 서있으며, 여기는 천사에 가까운 성자들의 세계입니다.
그 주변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 천상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공식적으로 낙성식이 거행된 1541년 10월 31일, '최후의 심판'은 모든 로마 시민의 경악과 찬탄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작품 속의 인물은 처음에는 모두 나체였지만 1564년 1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비속한 부분은 모두 가려져야 한다"라는 칙령이 반포되면서 생식기 부분에 덧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최근에는 화학약품을 사용하여 '최후의 심판'에 낀 그을음과 때를 씻어내는 작업이 완료되면서 긴 시간 동안 가려지고 벗겨져 잘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천지창조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가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세계 최대의 벽화입니다.
1508년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명을 받아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창세기 9장면을 말합니다.
미켈란젤로는 4년 동안 작업을 계획하고 계획에 따라 일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진행하는 어려운 작업이었으며 이로 인해서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지만, 미켈렌젤로는 혼자서 4년 만에 천지창조라는 대작을 완성해 냅니다.
천장화 즉 천지창조는 성서의 순서와는 반대로 노아에 관한 3가지 이야기로 입구 쪽에서부터 그려졌는데, 완성까지는 총 4단계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2개의 곡면 벽화에 그린 3가지의 노아에 관한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으로 1509년 9월 15일에 완성되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와 낙원추방'과 '이브의 창조', 4명의 나체상, 두 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0년 8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아담의 창조', '하늘과 물의 분리', '달과 해의 창조', '빛과 어둠의 창조', 의 4가지 이야기와 8명의 나체상, 5명의 예언자, 4개의 삼각형 벽화, 2개의 곡면 벽화로 1511년 1월과 8월 사이에 완성되었습니다.
네 번째 단계는 나머지 모든 원형 벽화로 같은 해 10월부터 1512년 10월 사이에 완성되었습니다.
그려낸 순서에 따라 그림이 점점 단순화되어 가는데, 이것은 높은 곳에 그려지는 천장화의 특수성을 미켈란젤로가 차츰차츰 깨닫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이기도 합니다.
천지창조는 1512년 완성되어 같은 해의 만성절인 11월 1일 제막식을 가졌으며 그 후 500여 년 동안에 천지창조는 여러 차례에 걸쳐 덧칠과 복원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1982년에는 일본의 한 방송사의 후원으로 최첨단 기법을 동원하여 복원 작업이 9년에 걸쳐 실시되었으며, 그림을 덮고 있던 때와 후대에 이루어진 덧칠이 제거되어 가면서 본래의 색채와 형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천지창조 사진의 맨 가운데를 보면 익숙한 그림이 보이실거라고 생각합니다.ㅎ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