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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황금시대 화가 렘브란트 반레인, 야경

by kihoon.story 2023. 9. 1.

네덜란드 황금시대 화가 렘브란트 반레인

네덜란드 황금시대 화가 렘브란트 반레인

네덜란드 황금시대 화가 렘브란트 반레인은 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중 한 명입니다.

반레인은 어려서부터 일찍 학교의 교육을 그만두고 화가로서 도제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역사화가인 야코프 이삭스존 반 스바넨부르크의 밑에서 3년간 배운 후, 암스테르담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반레인은 네덜란드에서 손꼽히는 역사화가 페테르 라스트만 밑에서도 도제 생활을 짧게 했으며,

새로운 미술적 기술들을 익힌 반레인은 고향으로 돌아와 공방을 열었고 많은 자화상들을 그려냈습니다.

반레인은 자신의 상을 확실하게 포착하기 위해서 두 개의 거울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표정들을 지어보곤 했으며, 자화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극적인 상황에서도 이런 감정들을 전달했습니다.

당시의 비평가들은 반레인의 이러한 방법들에 대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행동이라고 충고하였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반레인의 행동은 스스로에 대한 탐 구였을 뿐 아니라 깊게는 미술에 대한 탐구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반레인은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하여 물감의 농도와 빛의 역할을 실험했습니다.

키아로스쿠로 기법은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는 기법으로, 미켈란젤로와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작품들에서 처음 사용되어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반레인의 작품들은 밝은 부분은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주위와 배경에 어두운 부분을 넓게 배치하여 그림의 밝은 부분이 집중 조명을 받는 것처럼 표현해 냈습니다.

반레인은 같은 시대의 여러 화가들이 표현하던 방식과 형식성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림을 표현해 냈으며, 인간애라는 숭고한 마음을 그림의 구성 요소 중 하나로 스며들게 했습니다.

반레인은 여러 뛰어나고 비범한 사람들 속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깊게 관찰하고 주목하여 작품에 일상의 모습들을 그려냈고 종교적인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그림의 표현방법과 자신의 그림에 대한 가치관을 유지하였습니다. 반레인은 회화와 판화로 엄청난 명성을 얻어냈습니다.

렘브란트 반레인은 1631년에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와 암스테르담에서 유명한 외과의사인 니콜라스 툴프 박사를 그리는 의뢰를 받아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나온 작품이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로 17세기의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한 엄청난 그룹 초상화입니다. 이 작품은 반레인이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명함과도 같은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반레인은 귀족들을 위한 초상화 제작을 독점하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제자들을 양성하려는 목적으로 1634년에 성 루가의 길드에 가입하였습니다. 반레인은 사랑받는 스승이 되었고 그의 공방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반레인은 같은 해에 헨드리크의 조카 사스키아 반 오일렌부르그와 결혼하였습니다.

결혼 후 임대한 집에서 살다가 시간이 지나 유대인 거주 지역에 있는 호화로운 저택을 샀지만 이 저택의 구입이 반레인의 말년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렘브란트 반레인은 성서를 주제로 한 연작과 대작 역사화들로 계속해서 더 큰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이러한 여러 가지 작품들 중 최고로 불리고 있는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과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의 민방위대'  즉 '야경'은 그의 양식적인 발전 과정에서 전환점이 된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렘브란트 반레인은 말년을 향해 갈수록 제작하는 작품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기존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표현 방식을 모색하면서 그의 작품은 서서히 더 발전했습니다.

반레인의 화법은 갈수록 더 과감해지고 대담해졌으며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띠게 된 반면에,

반레인이 그린 인물의 모습들은 움직임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시기의 반레인은 반레인 미술의 최고 절정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렘브란트 반레인은 1669년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걸작들을 제작했으며, 반레인은 붓과 분필 그리고 조각칼을 이용하여 인간의 모습과 감정들을 세밀하게 묘사해 냈습니다.

 

야경

야경

렘브란트 반레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야경은 제목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한낮에 일어나는 일로, 부관의 명령에 따라서 부대가 출격하는 장면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1940년까지 작품을 덮고 있었던 어두운 광택 때문에 작품의 이름이 잘못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원래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과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의 민방위대'라는 제목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야경'이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1642년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절정에 완성되었으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민병대의 대장 프란스 반닝 코크와 그의 대원들이 작품의 제작비용을 같이 모금하여 렘브란트 반레인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주문하였다고 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시선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세 명의 인물이 있습니다.

중앙의 두 신사와 왼쪽 배경에 있는 작은 소녀를 말하는데 중앙의 두 사람은 붉은 허리띠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와 흰색 허리띠와 노란 옷을 입고 있는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 중위입니다. 

그림에서는 이 두 사람의 지휘하에 무장한 민병대원들이 출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들의 뒤에는 중대의 깃발이 있습니다. 렘브란트 반레인은 '야경'이라는 작품에서 중대의 전통적인 상징을 자연스럽게 표현해 놨으며, 중대의 상징인 수탉을 허리춤에 차고 민병대의 잔을 들고 있는 소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장이 됩니다.

'야경'은 그림의 스타일과 크기로부터 바로크양식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원래는 더 큰 그림이었지만 그림의 크기를 줄여서 부대가 배경의 아치 통로를 통해 걸어와 중앙에 모이게 되는 장면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반레인은 그림 안에 18명의 민병대원들과 어린아이와 북 치는 사람을 비롯하여 16명의 가상의 인물들을 추가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림의 인물들 중 부관과 소녀는 밝은 빛 속에 있으며, 나머지는 머리만 조명을 받은 채 모두 어둠 속에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빛과 그림자의 효과적인 사용을 그림에 표현하여 신비로운 표현을 나타냈습니다.

반레인은 '야경'이라는 그림 안에서 대장 프란스 반닝 코크와 그의 대원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과 그들의 총과 창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비스듬히 향해있는 모습들을 그룹 초상화임에도 이러한 여러 동작들을 생기 있게 표현해 냈으며, 그림의 인물들이 앞으로 전진하려고 하는 동작임을 알 수 있게 표현했습니다.